말씀묵상

[2020. 9. 8]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0 11,616 2020.09.07 09:38

가톨릭에서는 성모님을 믿음의 샘, 은총의 중재자, 근심하는 이의 위안, 신비로운 장미, 죄인들의 피난처, 신자들의 도움, 하늘의 문, 거룩하신 동정녀, 평화의 모후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부른다. 다양하게 성모님을 부르는 것에 비해 성모님의 이미지는 죄에 물들지 않아 맑고 깨끗하며 순종적인 여인이며, 온화하고 자애롭게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일관된다.

 

오늘 성모님의 탄생 축일을 지내면서 지극히 평범한 시선으로 나약한 여성이신 성모님을 묵상해 보면 어떨까

 

나자렛이라는 한 가난한 마을에 평범한 이름을 가진 젊은 처녀,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원하지 않는 임신 때문에 정혼자와 파혼의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이 임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인간적인 두려움의 시선에서 벗어나도록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두려움을 받아들이면서 주님께 순종을 통하여 당신을 주님의 도구로 봉헌한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떤 위험한 방향으로 흐르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삶 전체를 봉헌하는 대범함을 보여 준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성모님의 응답한다. 이 응답은 나약한 소녀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결단이다.

 

성모님은 임신한 여인들의 육체적인 변화처럼 임신한 열 달 동안 수많은 몸의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보통 인간들의 출산 과정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아직 정식 혼인을 하지 않은 여인의 몸의 변화는 타인의 시선과 구설수에 좋은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순종하겠다고 응답하였지만 아직은 이 난관을 극복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과정이다그래서 자신의 결심을 후회하며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지 않았을까?

 

만삭의 몸으로 먼 여행을 진행하다 구유에서 분만해야 했다면 산모 앞에 놓인 상황은 아주 열악했을 것이고, 자궁이 부풀어 오르고 양수가 터지면서 많은 출혈과 함께 출산을 하는 여인의 마음 속에는 오직 하나 생명에 대한 모성애만이 가득했을 것이다이런 어려운 환경에서의 출산은  이제 고달픈 인생의 서막이라는 것을 성모님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보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잘 키우겠노라고 다짐을 하지만 그녀에게 펼쳐진 현실과 주변 환경은 순박한 소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황제의 박해로 또래의 아기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팔자에도 없는 난민이 되어 문화와 풍습이 다른 먼 땅 이집트으로 피신하여 고달픈 난민 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도 성모님은 그 뜻이 무엇인지 곰곰이 새기며 현실을 받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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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성모님은 성전에 아들을 봉헌하러 들렀는데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라는 시메온의 예언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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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충격적이다.  여인의 가슴은 쓰라려 온다얼마나 더 아파야 하는가얼마나 더 인내해야 하는가무엇이 하느님의 뜻일까라는 물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12살 된 아들을 축제 기간에 잃어버렸을 때에 사흘 동안 속을 새까맣게 애태우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았다하지만 찾은 아들은 너무 서운한 말을 한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예상치 못한 아들의 대답은 이 아이는 평범한 존재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한평생을 하느님의 뜻에 순종했던 성모님은 모든 어머니의 모습처럼 결국 자식의 죽음 앞에서 신앙의 큰 위기를 경험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님은 사도들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사업에 협력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성모님은 우리와 비슷한 인간이었지만, 그녀만의 인상적인 모습이 있다. 성경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무슨 일이 일어나면 즉각 반응하기보다 그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간직하고 마음에 되새기며 곰곰이 생각하는 습관이다.

 

하느님의 역사에는 정답 없는 사건은 없다. 정답은 분명히 있는데도 나의 생각과 사고에 일치하는가? 일치하지 않는가?의 문제로 정답을 비켜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리고 더욱 위험한 것은 틀린 답을 정답으로 믿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 분석, 비판은 아주 많고 해결 방법은 너무나 즉흥적이다.  너도 나도 전문가가 되어 해법을 제시하지만 본질을 비켜가는 해답들 뿐이다. 교회, 즉 하느님의 백성인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곰곰이 헤아리던 마리아의 모범을 닮아 즉흥적이고 빠른 반응보다는 잠시 멈추어서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떨까? 

길(정답)은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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